가만히 서 있거나 길을 걷는 도중, 갑자기 세상이 빙글 도는 듯한 느낌과 함께 균형을 잃는 경우가 있다.
실제로 전체 인구 10명 중 3명이 경험할 정도로 어지럼증은 매우 흔한 증상 중 하나다.
하지만 어지럼증을 단순히 빈혈 탓으로만 여겨서는 위험할 수 있다. 이는 귀의 문제부터 뇌졸중과 같은
심각한 뇌 질환, 나아가 심리적 요인까지 우리 몸의 균형 시스템에 이상이 생겼다는 복합적인 신호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증상이 나타나는 양상과 동반 신호를 세심하게 살펴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적절한 대처를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신경과 전문의 박지현 원장(박지현균형과뇌신경과)과 함께 다양한 어지럼증의 원인을 명확히 구분하고,
각 상황에 맞는 관리법을 자세히 알아본다.
Q. 어지럼증은 얼마나 흔한 증상인가요?
아마도 어지럼증을 한 번도 느껴보지 않은 분은 없을 겁니다. 전체 인구의 30%가 평생 동안 학교나 직장을
못 갈 정도로 심각한 어지럼증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10명 중 3명꼴이니 굉장히 흔한 증상이죠.
실제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어지럼증 환자가 44%나 증가했습니다.
Q. 의학적으로 어지럼증은 어떻게 정의되나요?
어지럽다는 증상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균형을 잡지 못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약 190만 년 전 인류가 두 발로 서서 걷기 시작하면서 시야가 넓어지고 두 손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등 여러
이점을 얻었지만, 서서 생활하면서 치질, 디스크와 함께 어지럼증이라는 문제도 생겼습니다. 네 발로 걸을
때보다 두 발로 설 때 바닥에 닿는 면적인 ‘지지면’이 크게 줄어들어 균형을 잡기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진화 과정에서 시각, 귀 안의 전정 감각, 발에서 올라오는 체성 감각 등 여러 감각을 동원해 균형을
유지하는 시스템을 발전시켰습니다.
균형 감각은 미각이나 후각 같은 단순 감각이 아니라, 여러 감각이 합쳐진 복합적인 감각입니다.
이렇게 시스템이 복잡하다 보니 어느 한 곳에만 문제가 생겨도 균형이 무너지며 ‘어지럽다’고 느끼게 됩니다.
Q. 어지럼증의 종류는 어떻게 나눌 수 있나요?
어느 부위에 문제가 생겼느냐에 따라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뇌 문제로 인한 중추성 어지럼증이고, 둘째는 귀의 말초전정기관 문제로 인한 어지럼증입니다.
어지럼증의 약 40~50%는 귀, 약 20%는 뇌 문제로 인해 발생합니다. 그 외에도 심장 문제나 약물 부작용
등으로 인한 내과적 어지럼증, 불안이나 우울 같은 심인성 어지럼증, 그리고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
하는 복합성 어지럼증이 있습니다.
Q. 귀 문제와 뇌 문제로 인한 어지럼증은 어떻게 다른가요?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귀 문제로 인한 말초성 어지럼증은 갑자기 발생하며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듯한
증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중추성 어지럼증의 경우는 술 취한 듯 자세를 잡거나 걷기 어렵고 다른 신경학적 증상이 동반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어지럼증의 강도와 질환의 심각성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구토할 정도로 매우 어지럽다고 해서 반드시 심각한 병은 아니며, 반대로 증상이 가볍다고 해서 안심할 수도
없습니다.
Q. 누웠다가 일어나거나 잠결에 어지러운 증상은 왜 나타나는 건가요?
대부분의 어지럼증은 누우면 나아지지만, 누웠을 때 악화되는 대표적인 질환이 바로 이석증입니다.
이석증의 의학적 진단명은 ‘양성 돌발성 두위 현훈’으로, 이름에서 병의 특징을 알 수 있습니다.
‘양성’(나쁜 병이 아님), ‘돌발성’(갑자기 생김), ‘두위’(누워서 머리를 움직일 때 발생), ‘현훈’(빙빙 도는 어지럼증)
이라는 뜻입니다.
이석은 원래 우리 몸의 균형을 담당하는 정상적인 구조물로, 칼슘 결정체입니다.
이것이 제자리에서 떨어져 나와 균형을 잡는 세반고리관 안으로 들어가면 비정상적인 신경 자극을 일으켜
심한 어지럼증을 유발합니다. 50대 이후에 흔하게 발생하며 재발도 잦습니다. 하지만 간단한 ‘이석정복술’을
통해 이석을 제자리로 돌려놓으면 금방 회복될 수 있으므로, 약만 먹고 누워있기보다 병원을 방문해 치료받는
것이 좋습니다.
Q. 이석증은 재발이 잦다고 하셨는데, 급하게 어지러울 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요?
이석증의 2년 이내 재발률은 20~50%로 매우 높습니다.
누웠을 때 어지럽다는 공포감 때문에 계속 누워있으려고 하는 분들이 많은데, 이는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석증이 의심될 때는 눕지 말고, 등 뒤에 이불을 받쳐 비스듬히 기대앉아 있으면 증상이 가라
앉습니다. 그 후 병원을 방문해 효과적인 치료를 받으시면 됩니다.
Q. 배우 한지민 씨가 앓았다는 메니에르병은 어떤 질환인가요?
메니에르병은 19세기에 처음 보고된 질환으로, 귀의 문제로 발생합니다.
우리 귀 안에는 청력을 담당하는 달팽이관과 균형을 담당하는 세반고리관 및 전정기관이 있는데, 이 안은
림프액이라는 액체로 차 있습니다. 메니에르병은 이 림프액의 순환이 원활하지 않아 압력이 높아지면서 발생
합니다.
주요 증상으로는 귀가 먹먹해지면서 ‘둥둥’거리는 이명이 들리고, 청력이 저하되다가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극심한 어지럼증이 나타납니다. 어지럼증은 짧게는 1시간에서 길게는 3~4시간까지 지속되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석증과 달리 언제 발생할지 예측하기 어렵지만,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90% 정도는 완치될 수 있습니다.
특히 나트륨 섭취 시 림프액 순환이 악화되므로 저염식을 실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카페인 섭취, 수면 부족,
과로 등도 피해야 합니다.
Q. 뇌로 인한 어지럼증은 어떤 경우에 의심해야 하나요?
뇌의 여러 부분이 균형 유지에 관여하기 때문에 다양한 뇌 질환이 어지럼증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뇌졸중이나 뇌종양이 있으며, 비교적 젊은 층에서는 편두통성 어지럼증도 중추성 어지럼증의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다음과 같은 증상이 어지럼증과 함께 나타난다면 뇌졸중을 강력히 의심해야
합니다.
▲ 시야가 흐려지거나 물체가 둘로 보일 때 ▲ 말이 어눌해질 때 ▲ 몸의 한쪽에 마비가 오거나 감각이 둔해질
때 ▲ 혼자 서 있을 수 없을 정도로 균형 잡기가 힘들 때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 뇌혈관 질환의 위험 요인이 있는 분이 갑자기 어지럼증을 느낀다면 반드시 뇌졸중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뇌졸중은 골든 타임이 매우 중요하므로, 의심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병원을
찾아야 합니다.
Q. 편두통으로 인한 어지럼증은 어떻게 관리해야 하나요?
편두통은 흔히 한쪽 머리가 아픈 증상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통증 부위가 옮겨 다니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는 특정 자극에 뇌가 민감하게 반응하여 발생하는 것으로, 가장 흔한 증상은 두통이지만 편두통 환자의
70%가 어지럼증을 동반합니다.
어지럼증만 단독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어 진단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편두통성 어지럼증은 소화제를 먹어도 해결되지 않는 ‘체한 느낌’을 동반하기도 하므로, 이런 증상이 반복된다
면 전문의의 진료가 필요합니다.
Q. 마음의 문제로도 어지럼증이 생길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이를 심인성 어지럼증이라고 합니다. 우리 몸과 마음은 분리할 수 없어서, 불안하거나 우울할 때
신체적인 증상으로 어지럼증이 흔하게 나타납니다. 특히 전체 인구의 10~15%를 차지하는 예민한 성향의
사람들은 비슷한 자극에도 더 크게 반응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심인성 어지럼증 환자의 20~50%는
심리적 문제와 다른 신체적 원인(예: 이석증)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이 경우 다른 사람이라면
쉽게 회복될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만성 어지럼증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Q. 더운 날씨에 어지럼증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더운 날씨에 느끼는 어지럼증은 기립성 어지럼증과 관련이 깊습니다. 날씨가 더우면 우리 몸은 체온 조절을
위해 피부 쪽으로 혈액을 많이 보냅니다. 이런 상태에서 땀을 많이 흘려 체내 수분이 부족해지면, 누웠다 일어
나거나 앉았다 일어설 때 뇌로 가는 혈액량이 일시적으로 줄어들면서 어지럼증을 느끼기 쉽습니다.
여름철에는 충분한 수분을 섭취하고, 자세를 바꿀 때 천천히 움직이는 습관을 통해 예방할 수 있습니다.
Q. 어지러울 때 어느 병원에 가야 할지 고민됩니다.
우선, 빙글빙글 도는 어지럼증이 갑자기 생겼거나, 어지럼증이 계속 재발 또는 지속될 때, 그리고 고령층이나
기저 질환이 있는 분에게 어지럼증이 생겼을 때는 병원을 방문하는 것이 좋습니다.
● 이비인후과: 귀가 먹먹하거나 이명 등 귀 관련 증상
● 신경과: 말이 어눌해지거나 팔다리 저림, 두통 등 신경학적 증상
● 정신건강의학과: 최근 우울, 불안, 불면 등 심리적 어려움 동반
● 내과: 호흡 곤란이나 가슴 통증 등 다른 신체 증상이 동반
어디로 가야 할지 판단이 어렵다면,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가장 가까운 병원이나 자주 다니는 병원을 먼저
방문해 상담하시면 됩니다. 의사가 증상을 듣고 필요한 진료과로 안내해 줄 것입니다.
Q. 어지럼증에 좋은 음식이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어지럼증에 좋은 음식’은 없습니다. 어지럼증은 진단명이 아니라 증상이며, 그 원인은
수십 가지에 달하기 때문입니다. 특정 어지럼증에 좋은 음식이 다른 어지럼증에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립성 어지럼증에는 약간의 염분 섭취가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메니에르병 환자에게는 증상을
확실히 악화시키는 요인이 됩니다.
따라서 ‘어지럼증’에 좋은 음식을 찾기보다, 정확한 진단을 받고 그에 맞는 식습관을 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Q. 약국에서 파는 어지럼증 약을 먹어도 괜찮을까요?
어지럼증 약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진단명에 맞는 약이 있을 뿐입니다.
약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이나 병원에서 흔히 처방하는 약(예: 보나링)은 대부분 항히스타민제 계열의
증상 완화제입니다. 이는 원인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진통제처럼 일시적으로 어지러운 느낌을 억제하는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약을 남용하기보다는 먼저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Q. 어지럼증 예방에 도움이 되는 생활 습관이 있다면요?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은 수면의 질을 높이는 것입니다. 잠을 의도적으로 줄이는 것은 건강에 득보다 실이
훨씬 많습니다.
수면 부족은 대부분의 어지럼증을 악화시키고, 여러 퇴행성 뇌 질환에도 나쁜 영향을 미칩니다.
좋은 잠을 자기 위해서는 낮부터 신경 써야 합니다.
1. 카페인 줄이기: 잘 주무시지 못한다면 아침 커피도 디카페인으로 바꿔보는 것이 좋습니다.
2. 낮에는 햇빛 충분히, 밤에는 어둡게: 낮 동안 충분히 햇빛을 쬐고 밤에는 최대한 어두운 환경을 만들어
몸의 수면 사이클을 정상화해야 합니다.
3. 잠들기 전 스마트폰 멀리하기: 스마트폰 불빛은 숙면을 방해합니다.
운동 역시 균형 감각 개선에 도움이 되지만, 급성 어지럼증이 있을 때는 낙상의 위험이 있으므로 안전한 환경에
서 하거나 잠시 쉬는 것이 좋습니다.
Q. ‘어지럼증은 빈혈 때문이다’라는 속설은 사실인가요?
많은 분이 그렇게 생각하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빈혈로 인해 어지럼증이 생기려면 헤모글로빈 수치가
7.0g/dl 이하로 매우 낮아야 합니다. 이 정도가 되면 어지럼증보다 극심한 피로감, 무기력증, 숨 가쁨 등의
증상이 먼저 나타납니다.
‘빈혈=어지럼증’이라는 인식은 과거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았던 시절에 생겨난 문화적인 오해에 가깝습니다.
Q. 마지막으로 어지럼증으로 고생하는 분들께 조언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어지럼증은 복잡하고 모호한 증상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우리 몸의 균형 시스템이 보내는 중요한 신호입니다.
뇌, 귀, 심장, 눈, 심지어 마음의 상태까지 반영하는 신호인 셈입니다.
다행인 점은, 복잡해 보이는 만큼 세심하게 진단하고 꾸준히 치료하면 거의 모든 어지럼증은 해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 몸의 균형이 어디서 무너졌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함께 극복해 나가시길 바랍니다.
[출처] : 하이닥
